그의 외로움이 나를 위로하는 인생 영화 그녀(Her) :

그런데 종종 이 영화의 씬이 눈에 띄었다.

텅 빈 방에서 도시 야경을 바라보는 호아킨 피닉스의 쓸쓸한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용과 주제의식보다는 장면과 감정으로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 테오도르의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으로 전이됐다.

그래서 <그녀, her>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본 그녀는 수작 그 자체였다.

두 번째로 보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 장면이 때로는 따뜻한 빛으로, 때로는 빛나는 빌딩 숲의 야경으로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역설적으로 외로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다시 <그녀>의 영화 리뷰를 써본다.

영화를 두 번 보고 되새긴 주요 포인트를 제시하고 싶다.

본 리뷰는 스포일러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읽는 것이 좋다.

  1. 테오도르는 어떤 사람일까? #대필작가 #외로움 #의사표현이 부족한 사람의 직업은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하루의 1/3정도 일하면서 보내니까.
  2. 테오도르의 직업은 대필 작가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신 편지를 쓰는 일을 한다.

    애인에게, 할머니에게, 소원해진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써준다.

    자연과 그의 글은 유려하다 표현 하나하나가 예술적이다

이혼 서류에 사인하는 장면인데 연출이 지나치게(?) 아름답다지만 정작 테오도르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편이다.

대화부터 아내와의 관계가 틀어졌던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인 것 같다.

테오도르의 아내 캐서린(루니 말러 역)은 이렇게 말한다.

서로 맞추는 것보다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다.

테오도르는 훗날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영화 속 테오도르는 정말 섬세해. 인격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캐서린에게는 달랐을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는 배우자의 입장에서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묘하게 털어놓는 성격은 함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다소 답답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남편이었던 것 같다.

이런 성격은 <500일의 썸머>의 주인공 톰과도 비슷하다.

우연의 일치이거나 톰의 직업은 카드 작가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글로 써내려간다는 점에서 둘 다 비슷하다.

혹시 아무래도 남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법을 잊은 건 아닐까.

2) 감독의 질문 1 인간은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결론부터 말하면 ‘YES’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이 이 영화에서 내린 답이 그렇다.

해변에서도 사만다와 이야기하고 있는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확실히 사랑했다.

인간과 운영체제,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고 공감했다.

여러 순간을 함께하며 웃고 떠들었다.

같이 행복했어

운영체제의 사만다는 몸이 없다.

덕분에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테오도르와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었다.

테오도르의 집, 광장, 회사, 배, 잔디 등. 그건 아무데나 상관없어.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분명히 느끼는 기존의 보편적인 연인과는 전혀 다른 관계였다.

내가 테오도르에서도 사만다를 사랑했던 것 같다.

뭐든 채우지 못할 것 같은 본래의 외로움을 사버리는 덕분에 잊혀진 것 같다.

인간의 외로움은 대개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타인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내 미세한 목소리 떨림까지 감지해 주는 운영체제에 왜 마음을 주지 않을까.

3) 감독의 질문2) 인간과 OS의 사랑은 지속가능한가?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갈 차례다.

이 영화가 인간 테오도르와 운영체제 사만다의 사랑만을 담았다면 아마도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다.

감독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NO다.

결국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떠난다.

떠나야 했다.

테오도르는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아 사만다가 자신과 대화하는 동시에 다른 OS,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 사만다가 자신을 포함해 수백 명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결국 자신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들의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

‘난 네 것이기도 하고 아니야 (I’m yours and I’m not yours)’

사만다는 자신이 테오도르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테오도르라는 책을 천천히 읽고 또 읽다 보면 그 사이에 시공간을 초월한 균열이 생긴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이 마치 인간의 감정처럼 느껴졌다.

연인이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너무 궁금한 게 많다.

상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음악 취향이 어떤지, 취미는 무엇인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궁금했다.

그렇지만, 교제 기간이 길어서, 서로라는 「책」을 다 읽으면 어떻게 될까?

서로의 이야기를 전부 알아버린,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해버린 연인은 이제 서로를 알고 싶어하지않는다.

이렇게 대화가 짜릿하고 권태가 찾아온다.

결국 이별이 찾아오다.

인간과 운영체제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한 두뇌를 가진 운영체제가 한 인간에게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 다른 존재에게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인간관계의 중요성:부족해도 결국 인간 테오들은 아직 종이책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구성되는 미래사회에서 아직 그렇다.

그는 왜 종이책을 좋아할까? 사실 이는 우리가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e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물성 때문이다.

인쇄된 활자와 손으로 건네줄 수 있는 각 페이지.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또렷한 느낌, 그리고 그 책을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주었을 때의 마음. 모두 디지털로는 실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아직도 캐서린을 사랑하고 잊지 못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완벽한’ 연인이 되었지만 결국 그와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관계는 유일하지도 않았고, (사만다는 동시에 수백 명을 사랑했다) 지속가능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 영화는 서로 고함을 지르고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테오도르와 캐서린이 조만간 재회할 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유다.

근데 결국 사람이니까.내가 영화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나는 호아킨 피닉스를 ‘외로움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정의하고 싶다.

영화 ‘조커’에서도 그랬다.

그는 뒷모습에서도 외로움을 탄다.

그의 외로움에 너무나 공감해서 오히려 위안이 된다.

그가 속한 도시의 화려함은 그의 고독을 더욱 강화해 주는 장치다.

나도 화려한 도시를 걸으면서 외로울 때가 많았으니까.

OST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반반 섞은 음악 사진처럼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사만다의 소망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해 듣기만 해도 그들이 함께 했던 공간을 재현하는 음악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아련해진다.

설명할 수 없는 매운맛이 있다.

색깔 또한 대단하다.

테오도르 사무실은 파스텔, 집은 세련된 무채색으로 가득하다.

여러모로 감독이 연출면에서 신경을 쓴 게 눈에 띈다.

캐서린과 테오도르의 과거 장면을 재현할 때 이들의 얼굴을 내리쬐던 따뜻한 빛도 무척 좋아한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녀>를 수작으로 탄생시켰다.

이 영화는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의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그렇다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애덤스, 루니 말러의 이름이 거론된 뒤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모든 장면에 등장했다.

그의 얼굴은 전혀 비치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완벽하게 사만십로가 됐다.

섬세하면서도 어딘가 부서질 듯한 그의 목소리에 매료됐다.

사만다가 없었다면 <그녀> 역시 없었을 것이다.

살다보면 또 외로울 때가 있겠지.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잊혀지지 않는 본래의 외로움을 느끼는 날. 그런 날에는 <그녀>를 보고싶다.

나 자신이 테오도르가 되어 사만다를 만나고 싶다.

외로운 날에 다시 찾을 수 있는 영화가 있어서 좋았다.

영화 ‘HER 8.8 왓챠 재관람’: 그의 외로움이 나를 위로한다.

외로울 때 찾고 싶은 영화 평점 9/10